대선을 앞두고 음악과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월드뮤직이라는 단어 속에는 세계 각지의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현대 대중음악도 담겨 있다. 한때 우리는 월드뮤직을 '제 3세계 음악'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담긴 용어로 부른 적도 있다. 결국 월드뮤직은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월드뮤직 강국들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음악 이야기 속에 항상 정치적 배경과 아픈 상처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 남미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지경이고, 아프리카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신생 독립 국가들이 등장한 것까지는 좋은데 독립 직후는 어김없이 내전이 발발했고 지금까지 이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 오늘 이야기도 앙골라라는 아프리카 신생 독립 국가에 관한 이야기와 음악이다.


앙골라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있는 나라이며 20세기 후반에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국가의 이름이다. 이 나라도 여타 아프리가 신생 국가들처럼 독립 후에도 오랫동안 내전에 시달렸다. 심지어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투사들조차 막상 독립 후에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슬픈 역사도 갖고 있다.

앙골라의 월드뮤직 가수 발데마르 바스토스는 앙골라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아픈 역사와 현실 등을 노래했다. 훌륭한 은유가 가득한 노랫말 속에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그의 대표 음반 '검은 빛'은 비록 우리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지라도,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언어와 문화, 관습의 장벽을 넘는 인간의 공통 정서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는 그의 음반 '검은 빛'이 1990년대 최고의 월드뮤직 음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 독일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이 앙골라 가수는 스스로 자신의 음악이 "모순투성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프로 음악가지만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고,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첫 앨범은 남미에서 녹음했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나라 앙골라 출신이면서 스스로는 평화와 긍정적 사고방식에 대해 노래한다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모순이다.


해외 평론가들은 발데마르 바스토스를 가리켜 '앙골라의 목소리'라고 격찬하지만, 정작 그는 조국에서 추방당한 상황이었다. 반대파 정치인들의 모략으로 앙골라에 돌아갈 수 없는 그가 선택한 곳은 앙골라를 지배했던 나라 포르투갈이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속에서 그는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을 담아 노래한다. 그래도 그의 노래 이면에 깔려 있는 정서와 그가 느꼈던 고통, 그리고 예술가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투영된 그의 음악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간파하는 순간, 나는 탄식과 함께 그의 음악에 감정이 이입되곤 한다. 그의 음악은 아프리카 리듬이 가득 차 있는 모차르트의 음악 같다.

발데마르 바스토스가 태어난 1954년 당시 앙골라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포르투갈 역시 살라자르 독재 정권 치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어수선했다. 10대 때부터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발데마르 바스토스는 일찌감치 포르투갈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혔고, 정작 조국이 독립한 뒤에는 '반정부 문화계 인사'로 지목되어 브라질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발데마르 바스토스는 이런 역경을 거친 뒤에야 데뷔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후 브라질에서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 뒤, 발데마르 바스토스는 네 번째 앨범 '검은 빛'을 통해 1998년 세계 음악 시장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 넉 장의 음반 모두 조국 앙골라에서 녹음한 것이 없음에도, 그가 '앙골라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은 것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그때까지도 발데마르 바스토스는 브라질 망명시대 이후 포르투갈과 프랑스를 거친 뒤, 또다시 포르투갈에 정착했을 뿐, 202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번 다시 조국 앙골라의 땅을 밟을 수 없었다. 발데마르 바스토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딱 한 번 내한 공연을 가진 적이 있다. 독일에서 본 지 20년 만에 다시 만나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았을 것 같은데, 재회가 이루어지지 못한 게 아쉽다.
황우창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