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스산업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독립적인 '가스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 광양 LNG터미널 전경.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

국내 가스산업 구조가 한국가스공사 중심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독립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스 산업은 시장 설계와 요금 산정, 인프라 운영까지 가스공사가 전담하고 있어 제3의 감시·조정 기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전국 고압 배관망을 독점 소유·운영하며 도매요금 산정, 공급계획 수립, 인프라 투자 등을 일괄 수행한다. 가스공사가 제출한 요금안은 외부 감사나 독립 검증 없이 정부의 자체 심의로 확정돼 투명성·객관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시장 운영을 담당하고 '전기위원회'가 요금과 제도 관련 심의 기능을 맡으며 구조적 분권화가 이뤄진 전력 산업과 대조된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가스산업 내 중립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영국은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일본은 에너지위원회(EGC) 등을 통해 가스망 운영과 요금 산정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도 독립 규제기관을 두고 가스 분야를 총괄 관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에너지 전반의 독립 규제 기능이 전기 중심으로 제한돼 있으며 가스에 대한 감시 기능은 부재한 상태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입법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가스위원회' 신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기·가스·열을 통합 조정하는 '에너지위원회' 신설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양 당의 입법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가스공사의 요금과 배관망 운영에 대한 제3자 검증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고압 배관망의 공공성 강화와 망 중립성 확보도 과제로 떠올랐다. 배관망은 국가 핵심 인프라이지만 현재는 가스공사의 자산으로 묶여 있다. 가스공사는 공공기관이자 시장형 공기업인 만큼, 영리 추구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가스배관시설 운영에서 수익보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우선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또한 배관 이용과 관련한 중립적 심의기구가 없어 민간 사업자들은 진입 과정에서 비대칭적 조건을 감수하고 있다.


해외처럼 배관망 자산을 별도 공기업 또는 공공기관이 소유하고 가스공사는 운영자로만 참여하는 방식이 가장 확실한 개선책으로 거론된다. 배관망의 이용 조건과 요금을 외부에서 심의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통해 점진적으로 시장 경쟁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선 아직 사회적 합의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당장 실행 가능한 현실적 대안으로는 위원회 신설을 통한 단계적 분리가 제시된다.

업계는 가스 산업을 총괄 감독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달 '미래 성장을 위한 국민과 기업의 제안'을 발표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에너지위원회(가칭) 설치를 제안했다. 에너지 산업 전체를 관장하는 위원회는 통합 에너지 거버넌스를 위한 근거법을 마련하고 전기사업법, 도시사업법 등을 개편한다.

위원회가 출범한다면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050년 넷제로(Net Zero) 달성을 위해선 산업계뿐 아니라 정부의 전방위적인 에너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도 전기·가스·열을 통합해 다루는 기구가 에너지 믹스 변화에도 대응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수급을 위해서도 정부의 통합 지원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 시장은 한전·전력거래소·전기위원회 등으로 기능이 분산돼 있는데 가스 시장은 아직도 '공사 일원화' 구조"라며 "가스 거버넌스 구축은 단순한 조직개편 차원을 넘어 에너지 시장 전반의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